(2013) 삼위일체

2023. 7. 1. 18:50인생(Life_人生)/일(work_仕事)

김창준님 블로그의 예전 내용들을 뒤적이는 중, IBM 디벨로퍼 사이트에 기고하신 ''내가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글이었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래 밑줄쳐진 문단들)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팀에게 자문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배우면서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성과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게 아닙니다. 또 이런 질문을 하면 자신이 나약하게 보일 거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질문은 매우 중요하며 또 가치있는 질문입니다. 또 이런 질문을 하면서 떳떳할 수 있고 떳떳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다닌 첫 번째 회사에서는 나름대로의 배움과 그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이었고 신입이다보니 호기심도 많았고, 이것저것 보고 배울 것도 많았었기 떄문이죠. 성과를 생각하기 보다 무언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수를 하지 않는 데에 중심을 두고 일을 해나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기업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팀 분위기가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가 맡은 일에만 집중하는 분위기였죠. 팀 내에서도 뭔가 즐거운 업무를 위한 브레인 스토밍이라던가 어떠한 방법론의 도입이라던가의 움직임은 딱히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프로젝트 자체도 안정권에 접어든 상태였기 떄문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개발 스케쥴을 여유있게 잡으니 우리나라처럼 무지막지하게 업무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 회사에서는 성과, 배움, 즐거움 어느 것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업무량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야근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팀이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야근정신 하나만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배움과 성과, 즐거움이 모두 중요하고 결국 하나라는데 실무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두 가지의 희생 하에 성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일시적으로 다른 것을 희생해 잠깐 동안 성과를 어느 정도 빛나게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탁월한 성과는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어느 정도 성과가 있더라도 그 성과의 지속력이 떨어집니다. 반짝 스타, 한철 장사 같은 거지요. 하지만 애자일은 장기전입니다. 진화론이 장기전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배움과 즐거움을 포기하고 성과를 택한다지만, 이 팀은 성과까지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버그가 버그를 낳는 두서없는 개발 프로세스에 원인이 있었는데, 이게 잘 고쳐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태의 원인은 인지하고 있으나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 것이죠. 아니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요. 결국 임원들까지 나서서 이 팀에 달라붙어 해결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합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관련 실무 경험이 있는 분이 아닌 이상 구체적인 처방전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죠.

 

정말 이 세 가지를 대놓고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남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입니다. 그라운드 호그 데이(Groundhog D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묘한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죠. 빌 머레이 주연인데 그가 시간 함정에 빠져서 자고 일어나면 같은 날짜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즉 다음날이 되면 다시 원상복귀지만 자신은 변합니다.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이며, 또 자신을 바꾸는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선은 자기 자신에서 시작하세요. 예컨대, 내가 즐겁게 일하고 있지 못하다면 궁극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스스로 즐거워지려는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성과, 배움, 즐거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보수만을 바라보고 일하는 회사생활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